長篇 남자는 왜 사는가 [2]
김 재 찬
2. 비누냄새 혹은, 최진실이 죽던 날
시대의 아이콘으로도 불린다는 탤런트 최진실이 목매 자살한 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것은 내가 붙인 말은 아니다. 나는 그런 말을 싫어하고, 어떠한 경우에서든 사람에게 그런 수식어를 붙인다는 것에 대해서는 썩 내켜하지 않는 편이다.
그녀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녀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우리는 다만 나름대로 고통이 있었나 보다고 추측할 뿐이다. 제 아무리 이해를 많이 한다고 해도 제 삼 자일 밖에 없는 우리의 그것은 다만 미루어 짐작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그녀가 선택한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자살이라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의 탈출 방법 중 가장 극단적이고도 또한 그만큼 확실한 것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가장 이기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그녀 주변 사람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고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배려도 없이 스스로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몰두했으니까. 물론 자신이 고통에 겨워 자살을 선택하는 마당에 그런 것까지 생각할까마는.
자살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게 자유로운 건 아니다. 살아오는 동안, 특히나 청소년기에 자살이라는 그 매혹적인 향기에 취하고 또한 자살을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나 역시 자살을 시도했었으니까 말이다. 실패로 끝났던 그 자살시도. 실패로 끝났기에 내가 아직도 살아서 남의 자살이 어떻고 하는 것이겠지만 목매 자살한 사람이 어떠리라는 것은 미루어 집작할 수가 있다. 목매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내 경우를 비춰보면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얘기인 즉 나도 목을 맸었는데 얼굴이며 머리통은 새카맣게 죽고, 눈알은 솟아나오고, 또한 눈알의 핏줄은 터질듯 팽창한 채 피가 맺힌다. 나는 그 흉측했던 내 모습을 자살이 실패로 끝난 다음 날 용기를 내 들여다본 거울을 통해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검게 죽어버린 얼굴과 눈에 생긴 핏발은 쉽게 회복되지도 않는다.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 정도까지는 스무 날 정도나 걸렸고, 거의 정상 가까이 회복되기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려야 했다.
어쨌든 최진실의 죽음이 뜻밖이기는 했다. 친구와의 약속은 오후였으므로 일어나서도 이것저것 하다가 아내 이경연(李鏡娟)이가 일찍 출근한 뒤의 텅 빈 집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하는 중 티브이의 아침 뉴스에서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뉴스를 접하는 순간 ‘어, 쟤도 죽었네. 게다가 자살을? 어떻게 된 거야?’ 하고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뜻밖이었더라도 그것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탤런트 안재환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놀랄 준비가 되었었다고도 할 수가 있을 텐데 말하자면 이미 예방접종을 맞은 셈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은 모든 상황에 면역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만약에 경찰 공무원인 경연이가 함께였다면 놀라기보다도 이것저것 따지고 자살의 이유부터 추측하려 들었을 테지만 나는 나일뿐 아내가 아니었다. 매일 한 이불을 덮고 잔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튼 놀란 것이야 놀란 것이고, 그보다도 좀 더 일찍 집을 나서서 가는 길에 한윤주(韓潤珠)의 집에 들를까, 아니면 오는 길에 들를까 그것부터 결정해야 했다. 그녀는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한윤주, 그녀의 집은 4호선 전철을 타고 가다가 쌍문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 꼭 기본요금이 소요되는 만큼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니까 나와는 서로 4호선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사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 갈 때면 한 가지 묘한 점이 있다. 똑같은 장소에서 타고 똑같은 장소에서 내리는데도 택시요금이 조금씩 다르다는 게 그것이었다. 쌍문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 대부분은 꼭 기본요금에서 더 올라가지 않는데 어떤 택시들은 이삼백 원씩 더 나오는 것이다. 중간에 신호에 걸리거나 지체되는 일이 없는데도 그랬다. 미터기 조작인가 싶어 언제 한 번 택시 기사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까지 묻지 못한 채였다.
한윤주를 생각하면 비누냄새가 떠오르곤 했다. 그녀의 방에 들어가면 언제나 세안비누 냄새가 났다. 언젠가 한 번 윤주의 집에 갔을 때였는데 그녀는 누군가가 선물로 보내준 것이라며 조그만 상자로 한 상자나 되는 세안비누들을 바닥에 쏟아놓고 모조리 포장을 벗겨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비누 냄새가 좋잖아, 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그녀는 포장을 벗긴 세안비누들을 조그만 플라스틱 대야에 담더니 방 안의 오디오 세트 옆에 놓아두는 것이었다. 방안은 비누냄새가 가득했다. 그리고 붉고, 푸르고, 노랗고, 하얀 비누덩이들은 대야에 담겨서 나름대로 훌륭하게 장식품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마치 좀 커다란 크기의 조약돌들을 담아놓은 것처럼 말이다. 이후에도 그녀는 세안비누를 몇 개씩 사오기만 하면 포장을 벗겨 그 오디오 세트 옆의 얼룩무늬 플라스틱 대야에 담아놓곤 했다. 그렇게 담아놓고서 필요할 때면 하나씩 가져다 쓰고서 다시 비누를 사다가 포장을 벗겨 채워 넣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기 때문에 남편이 자원하여 지방의 지사로 내려간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그것이 관계회복의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도리어 불화를 그대로 굳히는 결과를 빚은 것 같았다. 적어도 주말이거나 휴일이면, 매주는 아니더라도 격주나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도 오가야 되는데, 그 어느 쪽도 올라오거나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커녕 주말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뭐하느냐고 하면 아무것도 안 한다거나 산에 간다거나 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한윤주의 포장 벗겨 담아놓은 세안비누 냄새를 기억 속에 저장해두고 있는 것인가. 이상하게도 그녀의 그 세안비누에 대한 생각은 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을 점유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기 영역을 구축해버렸다. 나는 그것을 방임했고, 결과적으로는 방조(傍助)를 한 셈일 것이다.
언젠가 윤주에게 과거의 내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친구에게 시집을 간 과거의 여자. 그 얘기를 왜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내 주변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아 자연히 알게 된 사람들이야 있을망정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느 부분까지 이야기를 하자 잠자코 듣던 그녀는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게 했다.
“그 이야기 그만해.”
“왜?”
“몰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앞으로 내 앞에서 다시는 그 이야기 꺼내지 마. 알았지? 꺼내지 않는 거야?!”
그러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내가 또한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외면해버렸다.
그 때, 내 시선을 외면하는 그녀의 옆얼굴에서 나는 또 포장 벗겨진 세안비누 알들과 비누냄새를 떠올렸다. 그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나는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오히려 그녀가 한 번 더 그 말을 해주고 어떤 다짐이라도 받아두겠다고 나섰으면 싶었다.
윤주가 세안비누를 포장 벗겨 두는 것을 보고 돌아온 며칠 뒤였다. 경연이가 퇴근길에 쇼핑센터에 들러 장을 봐서 승용차 뒤 트렁크에 싣고 온 커다란 비닐봉지 속에서 세 개 들이 세안비누 한 갑을 발견하고는 작업실로 쓰는 내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포장을 벗겨서 사기접시에 담아 책상 한쪽에 놓아두었다. 경연이 들어왔다가 그것을 보더니 ‘뭔 안 하던 짓이야?’, 하기에 ‘장식품 같기도 하고 냄새가 좋잖아’ 했더니 치우지는 못할망정 늘어놓지나 말라고, 그만 좀 늘어놓으라며 싹 걷어가고는 향수를 칙칙 뿌려주었다. 내가 원한 것은 결코 향수 냄새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계속>
[출처] 남자는 왜 사는가[2]-김재찬-비누냄새 혹은, 최진실이 죽던 날|작성자 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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